제4편 권태와 인간의 본질적 특성
157-(152) 자존심. 호기심은 허영일 뿐이다. 대개의 경우 알려고 하는 것은 단지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다를 건너 여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여행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이야기를 나눌 희망도 없이 단지 보는 즐거움만을 위해서라면.
158-(126) 인간의 묘사-예속, 독립하려는 욕구, 결핍.
159-(128) 애착을 느꼈던 일을 그만둘 때 사람들은 울적해진다. 여기 가정 안에서 즐겁게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여자를 만나 대엿새를 즐겁게 놀았다고 하자. 만약 그가 그전의 일로 돌아간다면 그는 비참할 것이다. 이보다 더 흔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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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31) 권태. 열정도, 할 일도, 오락도, 집착하는 일도 없이 전적인 휴식 상태에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 참기 어려운 일은 없다. 이때 인간은 자신의 허무, 버림받음, 부족함, 예속, 무력, 공허를 느낀다. 이윽고 그의 마음 밑바닥에서 권태, 우울, 비애, 고뇌, 원망, 절망이 떠오른다.
161-(417) 이 인간의 이중성은 너무나도 명백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영혼이 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보기에, 단일한 주체라면 그 터무니없는 오만에서 끔찍한 절망으로 그처럼 갑작스럽게 변화할 수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162-(94) 인간의 본성은 전적으로 자연이다, omne animal.)
인간이 자연적인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없애지 못하는 자연적인 것도 없다.
163-(129) 우리의 본성은 움직임에 있다. 전적인 휴식은 죽음이다.
164-(457) 사람은 제각기 자신에게 하나의 전체이다. 그가 죽으면 그에게서는 모든 것이 죽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자기가 모든 사람에 대해 전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자연을 우리의 기준에서가 아니라 자연 자체로서 판단해야 한다.
165-(94, 2) 인간은 본래 omne animal이다.
166-(359) 우리가 덕(德) 가운데서 우리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두 개의 상반된 부덕(不德)의 균형에 의해서이다. 그것은 마치 맞부는 두 바람 사이에 우리가 똑바로 서 있는 것과 같다. 어느 한 부덕을 제거해 보라, 우리는 다른 부덕 속에 떨어진다.
167-(323) 나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행인들을 보기 위해 창가에 서 있는데 내가 그곳을 지나간다면 그는 나를 보기 위해 창가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는 유독 나만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그 사람의 미모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다, 만약 천연두가 그를 죽이지는 않고 그 사람의 아름다움만을 죽인다면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테니까.
만약 나의 판단력, 나의 기억력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잃지 않고도 이 특성들은 잃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육체 안에도 정신 안에도 있지 않은 이 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이 특성들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므로 그것들이 나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특성들에 의하지 않고 어떻게 육체나 정신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한 인간의 영혼의 실체를 추상적으로, 그 안에 있는 특성과는 상관없이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있을 수도 없고 또 옳지도 않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특성만을 사랑한다.
그렇다면 지위나 직책으로 인해 존경받는 사람들을 경멸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단지 빌려온 특성들로 인해 사랑하므로.
168-(118) 다른 모든 재능들을 규제하는 주된 재능.
169-(147) 우리는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고유의 존재 안에 지니고 있는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관념 속에서 하나의 상상적 삶을 살기를 바라고 이것을 위해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우리의 상상적 존재를 아릅답게 꾸미고 보존하기에 힘쓰며 실제의 존재는 소홀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 마음의 평정이나 관용이나 충성심을 갖게 되면 이 덕목들을 우리의 상상적 존재에 결부시키기 위해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서두르며, 우리에게서 분리시켜서라도 또 하나의 존재에 덧붙이려고 한다. 우리는 용감하다는 명성을 얻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겁쟁이라도 될 것이다. 상상적 존재 없이는 실제의 존재에 만족할 수 없고 또한 상상적인 것과 실제의 것을 빈번히 교환하는 것은 우리 고유의 존재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커다란 증거이다! 자기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는 수치스러운 자가 될 테니까.